"가장 거침없던 불굴의 활동가" 미국 뉴욕타임즈는 부고면에 김복동 할머니를 이렇게 소개했습니다. 유명 인사가 숨졌을 때 부고면에 그 행적을 담아내는데 할머니는 긴 부고에서 세계적 인권 운동가로 자리매김됐습니다. 로이터 등 주요 외신도 일제히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전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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영국 BBC 방송 “침묵을 거부한 성노예 생존자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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미국 AP통신 “오랜 침묵을 깨고 첫 목소리를 낸 희생자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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뉴욕타임즈 "전시 성 노예 피해자들의 대표적인 인물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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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본 교도통신 “인권 운동가이자 일본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상징적 인물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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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외에도 NBC뉴스, UPI, 러시아의 노보스티, 중동의 알자지라, 인도의 더 힌두, 신남방권의 채널 뉴스 아시아등 각국의 매체에서 김복동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생애와 업적을 상세히 다뤘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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외신이 집중 조명한 것은 전 세계에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렸던 할머니의 삶입니다. 딸만 여섯인 집안에서 넷째 딸로 태어난 김 할머니는 만 14세가 되던 1940년 위안소로 끌려갔습니다.
“딸을 내놓지 않으면 동네에서 살지 못하게 하겠다. 군복 만드는 공장으로 가야 한다”는 말에 놀라 집을 떠난 이후 중국, 인도네시아, 말레이시아, 싱가포르 등지에서 참담한 세월을 보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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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본 로이터 통신 "이건 돈의 문제가 아니다. 고인이 원한 건 진정한 사과(Sincere Apology)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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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전 성폭행 피해를 당한 지 3년쯤 지났는데 얼마나 더 지나면 잊을 수 있을까요? 어느 정도 지나면 울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될까요?’
그랬더니 연세가 93살인 김복동 할머니가 말씀하셨다.
"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고 눈물이 나올 거요. 죽어야 잊히겠지."
김복동 할머니는 8년간 위안부 생활을 하셨다고 했다. 난 딱 하루였지만,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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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끝까지 싸워달라"
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유언입니다.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"김 할머니가 이마에 송골송골 진땀이 맺히면서 온 사력을 다해 한 말"이라고 전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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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루는 할머니께 누가 가장 보고 싶으냐고 여쭈었다. “엄마가 보고 싶다”
"나는 죽거들랑 불에 태워서 훨훨 뿌려주라고 했어. 누가 돌볼 거라고 묘를 만드나. 그래서 저 산에 훨훨… 산에다 뿌려주면 훨훨 나비가 되어서 온 천지 세계로 날아다니고 싶어"
http://news.jtbc.joins.com/article/article.aspx?news_id=NB11764690&pDate=20190131
http://www.hani.co.kr/arti/society/society_general/865666.html#csidx73c7a723a9bf67b919df5a6e74c597c